Saturday, March 4, 2017

2016년 11월 30일 대통령의 사생활, 나대는 여자, 엎드린 언론

인용하는 책: 강준만 저 <힐러리 클린턴: 페미니즘과 문화전쟁>



빌 클린턴의 성추문이 마구 번졌을 당시 "스타 검사가 어쩌구"하는 말을 주워듣고선 나중에 특검이라는 개념을 어느 정도 알게 되자 난 한동안 미국에선 특검을 스타 검사라고 하는 줄 알았다. 과연 미국, 대통령 조사하려면 별 정도는 달고 나와야지...는 개뿔이. 그냥 사람 이름이었다는 걸 이제사 알았다.(영어론 그냥 special prosecutor라고 나온다.)




생각해 보면 결국 빌 클린턴이 바람을 피웠다는 사실 뿐이었다. 딱히 새로운 사실도 아니었고(책을 읽어보니 결혼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서 계속해서 아무 여자에게나 찝쩍거렸고 힐러리에겐 소홀했던 나머지 부부 간의 성관계가 일 년에 두 번도 이뤄지지 않았다는 소문까지 돌았다.) 이것으로 인해 국정에 무슨 차질이 있었다거나 했던 것도 아니다.(시간을 조낸 안 지켰다고 하지만 이거랑은 상관없음) 그냥 "모범을 보여야 할 대통령이 감히 백악관 직원하고 부적절한 관계를 가져?"였다. 하지만 야당이었던 공화당과 그 소속 특검이었던 스타 검사는 이걸 집요하게 물고늘어진 결과 뭐 하나 제대로 알지 못하는 나도 기억할 정도로 거대한 추문을 몰고 왔다. 박근혜가 세월호 일곱 시간 동안 뭘 했는지에 대해 계속 사생활 운운하고 새누리도 이걸 계속해서 비호하고 있지만 정말 사생활의 영역은 이런 것이다. 정무를 봐야 할 시간에 자취를 감췄다가 튀어나와선 배에 갇힌 승객들더러 구명조끼 입고 있는데 왜 구하지 못하냐고 떠드는 게 아니라. 아니면 세간에 떠도는대로 보톡스를 계속해서 쑤셔넣고 효능이 애매모호한 마늘주사 백옥주사 다 맞고 줄기세포 치료까지 받는 위험까지 감수하며 다른 대통령들 다 늙고 지치기 일쑤인 재임기간 동안 젊음을 되찾아 그 얼굴로 최태민 닮은 차은택과 비아그라를 비롯한 각종 성관계 관련 약물을 가지고 침대가 세 대나 놓인 관저에서 정무를 봐야되는 시간인데도 불구하고 으쌰으쌰거렸다는 건가? -_-;





힐러리가 이런 빌 클린턴을 계속해서 용서한 것은 공화당 및 지지세력이 추측하는대로 사업상 관계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짐작을 하면서도 상당한 밉상으로 전락해 있었던 힐러리가 지지를 받은 것은 그 전에 힐러리가 여성해방운동에 몸을 담고 있었다는 점 외엔 설명할 수 없다. 이 일이 있기 전까지 힐러리는 "나야 집에서 차나 과자 만들면서 살 수도 있지만..."이란 한 마디 한 것으로 미국에서 전통적인 여성상으로 받아들여지는 집안일하는 어머니의 모습을 부정했다며 반발을 받을 정도였다. 남편과 함께 민주당 정부를 이끌고 있으니 공화당이 대부분인 보수의 맘에 들지 않았다고 볼 수도 있지만 그럼 빌 클린턴을 용서하고 있다고 지지를 하게 되는 것이 설명되지 않는다. 정치적 성향은 진보라고 하기엔 너무 오른쪽에 있기 때문에 버락 오바마와 붙었을 때에도 버니 샌더스와 붙었을 때에도 확연히 비교가 되었을 정도였다. 힐러리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보았던 것은 힐러리가 결혼할 당시 자신의 성을 포기하지 않을 정도로(나중에 남편의 정치에 방해가 되는 것을 견디지 못한 나머지 포기했지만) 여성해방운동을 따랐고 그 결과 기존의 남편 뒤에서 따르는 전통적인 아내가 아닌 남편의 앞에 서있는 것처럼 느껴지기까지 할 정도로 이질적인 존재, 단순히 말하면 '나대는 여자'였던 것이다. 힐러리가 옳은 것을 말하는냐 아니냐보다는 '나대는 여자'는 재수가 없다가 먼저 작용하는 것이다. 그런 힐러리가 바람둥이 빌 클린턴을 용서하고 있다. '나대는 여자'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순종적인 아내가 나타났다. 오, 우리가 존경해야 할 남편에 순종하는 영부인이시네! 끝. 어쨌든 이건 이 때 뿐이고 힐러리는 일찍 대통령에 올라 일찍 은퇴한 남편은 내비두고 독자적인 정치가로 바뀐다. 오, 나대는 여자가 다시 나왔네! 계속. 전에 썼듯이(http://dbzlanfk.blogspot.kr/2016/11/blog-post_77.html) 시민들은 계속해서 감정적인 투표를 하고 있다. 그런데 나대는 여자가 나왔다. 공화당 쪽에서 아무리 트럼프가 맘에 안 들어도 나대는 여자에게 표를 줄 수는 없다. 그런 선거였을 것 같다. 양성평등을 위해 극복해야 할 산이 얼마나 많은지 보여주는 예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힐러리에 대한 이야기지만 상당한 분량을 빌 클린턴에 할애하고 있다. 그만큼 힐러리의 정치여정에 빌 클린턴이 상당한 영향을 차지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힐러리가 빌 클린턴을 대통령으로 만들었다 이야기하지만 역으로 힐러리도 빌 클린턴이 없었다면 그저 그런 변호사로 끝났을 가능성이 높다. 첫 지도자의 직함이 대통령이었고 인권을 위해 내전까지 불사한(물론 이 뒤엔 돈 계산이 존재하고 있었지만...) 민주주의 국가 미국에서 여성 정치의 위치는 아직도 이 정도인 것이다. 여성 후보가 대선에서 승리했던 한국...은 개뿔. 황상민 교수가 말한 것처럼 생식기만 여성이고 뒤에 박정희가 없었으면 선거에서 이기지 못했을 거고 최순실이 없었으면 정책 결정도 못했을 인간이 이기는 게 무슨 성평등인가? 한국 국회의 현 성비는 83:17이고 지방자치단체 쪽으로 가면 여성단체장이 있는 곳이 어디인가 싶을 정도다. 광역단체장을 모두 남성 후보가 차지했기 때문이다. 내가 살고 있는 양천구의 경우 여성인 김수영 씨가 구청장으로 앉아있지만 이 분은 예전에 구청장 자리에 올랐다가 억울하게 박탈당한 이재학 씨의 아내이시다. 구의회는 열여덞 명 중 여성 의원이 네 명... 다른 곳 가도 다 비슷한 구도다.

금오산의 전설

이딴 말이나 지껄이는 게 박근혜 찍었던 사람들의 성개념 인식 수준이다. 박지만 이름은 과잉도입이라고 해도 여자보다 남자가 낫지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숫자가 적을까?








 



언론이 자극적인 소재에 매달린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었다. 자본이 점점 더 힘을 얻게 되면서 언론은 자본의 눈치를 보는 동시에 자기들도 돈을 벌어야 된다는 생각에 사로잡히게 된다. 하지만 그 결과 언론은 쓰러지거나 자본에 먹히기 시작했고 그렇게 해서 나온 언론의 태도가 이번 미국 대선에서 앞다투어 트럼프의 말 한 마디, 행동 하나를 시시콜콜 다 담아서 "여기 웃기는 게 있어요!"라고 선전을 해주며 웃기는 광대를 모든 것을 먹어치우는 괴물로 만들어내기였던 것이었다. 한국의 언론도 이런 자본에 사로잡힌 지 오래이다. 자본을 비판하는 기사는 자르고 어디에선가 들어온 돈으로 기사를 쓰고 있다. 정부를 비판하는 것은 자본의 뜻을 거스르는 행위를 했을 때이며 마찬가지로 정부에서 들어온 돈으로 기사를 쓴다. 그들에게 이런 곳에 속해 있지 않은 시민들은 간장 종지 하나 더 안 주는 것만으로도 무례한 노예에 불과하다.(간장 두 종지)





그 결과 시민들은 언론을 믿지 못하게 되었다. 자본과 정부의 영향력이 크게 작용하는 언론일수록 더욱 그렇다. 미국 언론들이 그렇게 트럼프를 뽑아선 안 된다고 외쳤지만 시민들에겐 공허한 외침이었을 뿐이었다. 많은 언론들이 자기들에게 유리한 기사만을 뽑고 있는 게 뻔히 보이는데 그들을 믿을 수 있겠는가? 믿는 것은 같은 편에 서있는 사람들 뿐, 반대편에 있는 사람들을 돌릴 수가 없다. 그렇게 벽을 형성하는 데에 벽을 허물어야 할 언론이 일조를 하는 아이러니한 상황까지 발생한 것이다. 지금 조중동 종편과 지상파 방송이 하고 있는 행위가 그런 것이다. 지금 정권을 잡고 있는 새누리를 지지하고 있는 사람들과 돈 앞에 넙죽 엎드린 사람들이 보기에 좋은 기사만을 올리며 벽을 계속해서 쌓는 것이다. 지금이야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워낙 크다 보니 다들 거기에 관심을 쏟는 거지, 이 일이 끝난 뒤에도 계속 이런 탐사보도를 하고 있을까? 심지어 문화방송, 한국방송 같은 경우 이 일을 깊이 다루는 것조차 꺼리고 있다. 벽을 허물어 시민들이 단일한 힘을 만들어내는 것은 이들에게 중요하지 않기 때문, 아니 자신들에게 떡고물을 주었으므로 떠받들어야 할 자본과 권력에 위협을 줄 수 있는 위험한 일이기 때문이다. 이런 움직임은 하루 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이걸 다시 되돌릴 수 있을까? 되돌릴 수 있다면 상당한 발전이 있겠지만 매우 막막해 보이는 것이 현실이다. 실제로 지금 언론 상황을 되돌려야 한다는 많은 언론인들도 어떻게 원래대로 돌릴 수 있냐는 질문에 상당히 두리뭉실한 답만을 내놓고 있다. 사실 혁명적으로 구조가 바뀌지 않는 한 힘들거란 걸 당사자들인만큼 잘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과자의 단맛을 안 아이는 양친이 억지로 밥상에 끌고가지 않는 한 과자에서 손을 땔 수 없다. 그런데 언론개혁의 대상은 성인이다. 양친이 끌고갈 수가 없다. 스스로 이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고 행동해야 하는데 단맛을 십 년 가까이 보아온 어른들이 과연 이 단맛을 포기할까? 긍정적인 예상이 떠오르지 않는다.



글을 보고서 생각나는대로 찍었는데 이게 맞는 건지 모르겠다.

대통령에게도 사생활은 있을 수 있다. 다만 그건 근무시간이나 국가적 비상사태가 벌어졌을 때 논할 수 있는 개념이 아니다. 그 두 개가 겹쳤을 경우엔 더더욱 그렇다. 하지만 박근혜-최순실은 계속해서 사생활 침해라는 신박한 논리로 대응하더니 나중에 와선 무려 "팩트"를 들이대며 자신도 논 게 아니라는 이야기를 한다. 하지만 그 "팩트" 중에서 확실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은 거의 없다. 지금까지 밝혀진 진실 중 확실한 것은 박근혜가 강남 미용사를 불러서 머리를 한 시간 반(또는 청와대 말대로 이십 분) 동안 했다는 것 뿐이다. 그 외엔 모두 아무리 두드려도 열리지 않는 금고 속에 갇혀있다. 현대의 민주주의 국가 지도자들은 모두 그 때에 어떤 일을 했는지 다 기록되고 비상사태가 벌어졌을 경우 적극적으로 대응하며 진실을 밝히려는 사람들을 무시하지 않는다. 최소한 사생활을 언급하지는 않는다. 그에 반해서 한국에선 정부 최고의 수반이 사생활을 들이대며 기록을 모두 숨겨버리고 진실을 밝히려는 사람들을 적극적으로 무시한다. 대체 무슨 차이인 걸까...

박근혜-최순실 탄핵이 기각될 경우 공직윤리는 무너질 수 밖에 없다. 전임이 이렇게 해도 무사했는데 우리가 못할 것이 뭐냐는 의식이 팽배해질 것은 불 보듯 뻔하다. 게다가 이런 사례로 탄핵되지 않는 판례가 남겨질 경우 법원 쪽이 혼란을 겪는 것도 마찬가지다. 한국 재판은 판례중심주의가 아니지만 헌재 같은 곳에서 내린 판결을 뒤집기란 쉽지 않다. 그렇게 됨으로써 자유는 탄압당하고 부패한 권력은 계속 이어나가는 악순환이 이어질 수 밖에 없다. 이런 길로 갈 수는 없다. 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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