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turday, February 25, 2017

위치가 다르니 사고도 다르게 작용할 수 밖에 없다

일제 당시 군인이나 판사 같은 사람들이 조선 독립운동가들에 존경을 표하거나 당시 일을 반성하는데 친일 독재 부역자들은 왜 반성하지 않는가는 그들이 서있던 위치가 달랐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일본인들은 자신들이 나라를 위해서 일한다는 자부심 하에 일한 거기 때문에 당당했으면 당당했지 쫄리지는 않았을 거고 부역자들은 나라를 위해서라기보다는 자신의 안위를 위해서만 행동한 것이기 때문에 당당함보다는 자신들이 한 행위의 찜찜한 구석을 덮기 위해서라도 그것을 지적할 수 있는 남들을 위협했고 어떻게든 자신을 강하게 보여야 했었을 겁니다.(죠슈아 오펜하이머 감독의 영화 '침묵의 시선'에서도 인도네시아의 공산당 숙청에 참여했던 사람들 중에서 자기 잘못을 인정한 사람은 많지 않았고 도리어 그 영화에서 주역을 맡았던 피해자의 동생에게 협박을 하는 사람까지 나왔죠...)

그런 행위의 결과는 같았다 해도 일본인들 중엔 자신이 당당하게 한 결과가 자신이 본래 가지고 있었던 양심과 대치하는 경우 이에 대한 갈등을 겪게 되고 부역자들은 자신이 가지고 있었던 양심과의 대치는 이미 끝난 상황이기 때문에 결과에 연연하기는 커녕 그것이야말로 그들이 원하는 개인의 안위 내지 영달과 연결되기 때문에 더욱 그 길로 나가게 되었을 것이고 그것이 커지면 커질수록 다른 사람들에게 빼앗길까봐 두려워 한 무리에서 정상에 올라 암컷들을 차지한 수컷 동물처럼 다른 이들을 윽박질렀겠죠.

그렇게 시기를 거쳐가면서 자신이 당당하게 나설 곳은 어디인가를 생각한 끝에 국가주의에서 탈피한 일본인들은 일제가 끝나도 한국인들에게 많은 도움을 주기까지 하고 반면 부역자들은 좋은 시절이 끝날 것 같은 시점을 본게임으로 삼았을 겁니다. 그래서 부역자들은 어떻게든 이승만과 미국을 옹호하며 살아남았고 그들이 그 정신을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로 이어지는 군부독재 동안의 부역자들에게 영향을 주었을 겁니다.

그리고 독재 부역자들도 좋은 시절이 끝날 듯 보이자 어떻게든 자기들의 기득권을 지켜내기 쉬운 사람을 찾았고 그것이 박정희에서 이어진 박근혜-최순실이겠죠. 그래서 지금도 끈질기게 박정희의 허상을 좇고 있는 사람들을 규합하려 애쓰는 것일 거고... 결국 애시당초 당당하지 못했던 사람들이 반성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일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저 사람들에게 인정하기를 요구하는 잘못됨은 이미 잘 알고 있지만 그것을 뛰어넘는 것을 지키고 있다고 생각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것이 남을 속이는 형태든 자기최면의 형태든...


이 글은 정봉주의 전국구 중 '[진짜역사가짜역사] 41.독립군-그 처절한 삶!'을 듣고 맨 위에 써놓은 의문이 제기된 것에 대해 내 생각을 썼던 글이다. 역시나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았고 편가르기 중독자들의 댓글에 이 글이 묻혀지는 게 싫어서 블로그로 옮겨왔는데 이 사단을 겪었다. 안전한 곳은 결국 없는 건지...

아무래도 최근에 썼던 글들은 저장되어 있지 않은 것 같다. 예전 글들은 저장된 페이지가 뜨는데 2월에 쓴 글들은 뜨지 않는 걸로 보아서 최근 올렸던 글들은 저장되는 기간을 만나지 못한 것 같다. 여러 모로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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