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병역과 관련해 두 개의 중요한 이야기가 나왔었다. 하나는 양심상 병역거부를 한 사람들이 재판에서 무죄를 받았다는 것, 하나는 유승준 사죄. 물론 이 둘을 같은 천칭에 놓고 볼 수는 없다. 전자는 이로 인해 겪게 될 불이익을 감수하고서라도 자신의 신념을 지키겠다는 것이고 후자는 그저 막상 닥친 불이익에게서 도망친 것. 하지만 두 이슈 모두 지금의 병역제도가 낳은 현상임에는 틀림이 없다.
군대는 원래 존재하고 있었던 개념이 아니다. 군대처럼 무리를 짓고 다니는 다른 동물들도 딱히 같은 종족을 해치기 위해 존재하기보다는 방어를 위해 존재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인간들은 제한된 식량 채집에서 벗어나 농경에 들어가면서 사유재산을 가지게 된 이후 군대를 조직했다. 더 많은 땅과 백성들을 자기 휘하에 넣으려고 눈독을 들인 지배자들의 생각에 의해 만들어지고 옆 마을, 옆 나라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문명이 만들어지기 전에야 소규모 전투고 무기가 발달하지 않았기 때문에 사상자도 많이 나오지 않았겠지만 규모가 커지고 무기가 발달함에 따라 사상자도 점점 늘어갔다. 커지면 커질수록 대립하는 세력 간의 군비경쟁은 더더욱 심해졌고 이를 정당화하기 위한 국가주의도 점점 영향력을 키워갔다. 이런 상황은 가속되었으면 가속되었지 감속이라든가 정지를 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 가속상황에서 현재 우리가 서있다. 이젠 후퇴같은 걸 꿈꾸어봤자 이상주의자라는 이야기를 들을 뿐 가속을 줄이는 것조차 힘겹다. 의무복무를 해야 되거나 세금으로 일부 힘없는 사람들을 군대에 보내거나. 이런 흐름에 직접 거스르는 순간 이 가속에 채여서 많은 것을 잃을 준비를 해야 한다. 하지만 잃을 것을 준비하지 않아도 되는 경우가 있다. 이런 가속을 부추기는 권력층과 부유층들이다.
사람들은 이 가속에 채인 사람들을 비판한다.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한 기사가 뜰 경우 저런 걸로 군대에 안 가면 누가 나라를 지키느냐, 저 사람들이 양심적이면 우리는 비양심적이라 군대를 갔느냐 등 온갖 욕설이 쏟아져 나온다. 양심적 병역거부가 아니라 신체검사를 속이는 등의 경우는 주로 연예인이나 운동선수의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이걸 가지고 열심히 욕을 한다. 하지만 이게 소위 고위급 관료의 아들이거나 재벌의 아들인 경우 이를 비추는 언론도 접하는 사람들의 태도도 사뭇 달라진다. 유승준을 그렇게 욕하지만 유승준같은 경우보다 더 심하게 국적을 버리고 군대를 가지 않은 사람들에 대해 우리는 얼마나 알고 있을까? 유승준이 한국에서 돈 벌다가 미국으로 튀었으므로 이걸 비난받는 건 당연하지만, 그 이상의 돈을 가지고 미국으로 튄 사람들은? 그 사람들도 병무청에서 유승준 대하듯 한국으로 입국하는 것조차 안 되는 걸까? 내가 시야가 좁아서 그런지 유승준 외에 그런 대우를 받고 있는 사람이 있다는 걸 알지 못한다. 내가 아는 건 기껏해야 고위관료 중 몇십 몇백 명이 면제받았다, 부유층 중 몇십 몇백 명이 면제받았다하는 썰렁한 통계뿐이다.
물론 본인이나 아들이 군대를 가지 않으면 다소 새되는 분야가 있긴 하다. 장관이나 총리 같은 공개적인 심사를 받고 올라가는 자리의 경우다. 하지만 뭔가 엄청난 흥행요소가 있지 않은 한 흐지부지될 뿐이고 일부 야당(의원이나 당직자 말고) 지지자들만 부글부글 끓을 뿐이다.
결국 만만한 곳 때려잡기만 줄창할 뿐, 정작 문제가 되는 권력층 부유층의 노블리스 오블리제 상실이나 맹목적인 국가주의를 때릴 생각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사회를 바꾸기보단 순응하고 이 순응에서 나오는 부산물을 때려넣을 장소를 찾게 된다. 그것의 희생양이 되는 것은 사회를 바꿔보려다가 사회에 채인 사람들이거나 어떻게든 피해보려고 잘못을 저지른 힘이 부족한 사람들이다.
남자 군대 VS 여자 임신 드립 대회도 이런 상황에서 나오는 것이고... 남자들은 부산물을 때려넣을 곳이 필요하고 여자들도 다소 부채감은 있을지 몰라도 일방적으로 부산물을 받는 것은 부당하다는 생각에 당황스러운 논리로 대항하게 된다. 이걸 받은 남자들은 더 당황스러운 논리로 대항하게 되고 결국 끝이 없는 소모전으로 이어진다. 상관없는 권력층과 부유층은 팝콘이나 씹을 뿐이다.
두 나라가 싸우고 있다고 생각해 봤을 때 가장 좋은 결과를 낳는 것은 병사들과 인민들이 이 전쟁이 무익한 것임을 깨닫고 서로의 지도부에 압력을 가해 서로에 대한 공격을 취소하게 만드는 것이다. 하지만 역사상으로 봤을 때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고 뒤늦게 시민들이 나서는 경우도 있지만 그런다고 지배자들이 멈추는 걸 본 적이 없으니 그저 답이 없다는 생각을 하고 주저앉게 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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